...../2004.

절대진리와 인간됨. 유리수와 무리수

맛있는물 2004. 3. 28. 12:18

 이 글은  정치와 진리(김선욱)란 책에 대한 한장짜리 생각으로서 '한국정치의 이해'라는 달랑 9명 듣는 강의에 리포트로 낸 것이다.

 책은 한나 아렌트라는 유태학자의 정치철학을 주로 해서 쓴 것이었는데 웬지 읽고나니 프리메이슨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 왜 떠올랐지?

 

 책을 다 읽을 때쯤 해서 야당들이 야합해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짓을 하는 매우 훌륭한 얘기감이 생겨서 A4용지 한장에다 꾸긱꾸긱 글을 채워 냈다.

 

 

 

 절대진리와 인간됨. 유리수와 무리수 2004.3.15 

 

 탄핵정국으로 정치란 것이 어느때보다 더 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 그렇기에 예의 한국정치에 대한 이해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 시기에 이 책은 나에게 마침 시기에 맞는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첫 머리부터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나에게 이 주장은 마키아벨리즘이라던지 니힐리즘등의 '인간에게 진리따위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거다' '선이란 건 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와 같은류의 나열이 아닐까하는 등의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읽다보니 글쓴이가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실증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적인 영역을 바라보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는 걸 알수 있었다.

 

 글쓴이는 먼저 정치를 철학적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현상 자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나서 인간의 '복수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복수성'이란 인간 개체의 다양성,개성등을 뜻하는데 그렇기에 이것의 가치는 좋고 나쁨의 판단으로 따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복수성은 정치적인 영역의 것이기에 정치에 대해 어떤 '좋고 나쁨의 올바른 척도'를 가지고 답을 끌어내려 하는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철학이나 과학적인 진리 규정이 아닌 서로간의 관계설정이라 할수 있는 설득의 행위이고 그럼으로 도덕은 정치적 특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올바른 정치를 할려면 윤리과학적 진리에 의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사이의 연대에 의한 이른바 큰 의미의 '올바른 관계설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덕이란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글쓴이는 나중에 책이 끝날 즈음 어떻게 보면 모순되게도 짤막하게 '그러나 도덕과 정치의 양자가 완전히 구분되지는 않는다'고 써놓았다. 이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 윤리라고 받들어지는 어떤 실재성없는 절대 법칙이 아닌 '인간됨'이라는 관점에서 나오는 이기심을 벗어난 연대의 힘이 정치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바일거다.

 

이 책에는 나찌의 제3제국시절 유태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이란 사람의 재판얘기가 써있다.
아이히만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보통의 선량한 사람이나 유태인을 불태워버린 것에 추호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그것이 자신이 속해있었던 제3제국의 진리에 맞는 행동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개개인 스스로의 자율적인 판단을 거치지 않은 어떤 절대진리라는 것은 커다란 위험성을 갖는 것이라는 걸 뜻한다. 아이히만에게 '절대진리'는 총통의 무오류성과 아리안민족 선민주의였다.

 

 이와 비슷한 예를 오늘 나는 지난주 국회에서 있었던 탄핵사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국회의원 개인들은 과연 스스로의 '인간됨'에 의한 자율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그렇게 움직였던 것인가? 또 그런 국회의원들을 뽑아준 국민들은 과연 스스로의 '인간됨'에 의한 자율적인 선택으로 뽑아준 것인가?
어떤 '절대진리'로 뽑아준 것은 아닌지? 아님 '인간됨'을 잊은 이기심에 의해 뽑아준 건 아닌지?

 

 ps.사족이겠지만 나는 정치의 영역에서도 어떤 진리적인 특성이 내재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이 서로의 관계속에서 그것을 절대적으로 규정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뿐인지 모른다. 예를 들자면 그것은 무리수인 원주율과 같은 성질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한 피타고라스라는 인물은 '만물은 유리수로 규정지을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종교화까지 했지만 무리수란 건 존재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피타고라스의 한 제자가 무리수를 밝혀냈지만 피타고라스학파는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를 살해했다고 한다.)
 원주율은 3.1415926535....로 끝없이 이어져 그 실체를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3.14가 4.31보다 더 계산하기 좋아 더 멋진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4.31로도 건축물을 지을 수 있지만 3.14가 더 낫다. 정치적 다양성은 개성있는 건축물과 같이 당연한 것이지만 좀더 정확한 원주율은 건물을 더 반듯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치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