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사상계 기고문 '한국노동운동의 진로', 김대중 31세.
(...전략)
여기서 장황하게 정치론을 늘어놀 여유는 없지마는 여하간 자본주의의 제도하에서는 노동자의 복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가 없는 것은 이미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 경제의 후진성을 지양하고 근대적 생산을 급속히 확충 발전시켜야 함을 서두른 나머지, 우선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놓고 그 후 서서히 노동자의 후생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논자가 많은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은 마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고기더러 동해 물을 끌어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개철지어의 장자고어와 마찬가지 모순으로서 그간에 있어서의 노동자와 전 근로계급의 고초와 희생을 무엇으로 감당해낼 것이며, 기술한 바 공산당과 대항해서 노동자가 어떻게 굳센 민주 진영의 선봉으로서 싸우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가?
그렇다고 필자는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당장에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실시하도록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초보조차 제대로 못 갖춘 우리 나라 경제 형편으로 사회주의를 꿈꾼다는것은, 그것이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만의 관장을 주장하는 소극적 사회주의건 생산, 소비 양면의 장악을 목적하는 적극적 사회주의건 도저히 현실을 무시한 공상에 불과한 것인 동시에 사회주의 그 자체 역시 각국에서의 실험의 결과 상당한 결함이 있다는 것도 이미 주지되어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지향할 길은 죄악적인 착취와 지배를 자행하는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일방, 우리의 실정이 용납지 않고 겸하여 전체주의적인 통제와 생산 능률의 후퇴를 면치 못하는 사회주의 자체도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며, 결국 사유재산과 개인의 창의는 이를 어디까지나 존중하되 종래와 같은 자본만의 우위지배를 단연 배격하고 노동, 자본, 기술의 3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동함으로써 생산의 급속한 향상을 기하고 그 이윤의 분배에 있어서도 노동자와 기술자 역시 응분의 참여가 허용될 것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종래 사회주의가 생산 수단의 사회화에만 중점하던 것을, 이제 생산수단보다도 기업운영과 이윤분배에 있어서의 사회화라 할까, 즉 노동자와 기술자를 자본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처우함으로써, 생산능률화의 감퇴를 가져옴이 없이 사회주의 본래의 목적인 근로계급의 복리의 증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새로이 각성된 세계적 사조의 지향이며, 이러한 경향은 북구제국을 위시한 구주 여러 나라와 심지어 자본주의의 본가인 미국에서까지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며 , 지금 미국에서는 각 기업체의 주권을 노동자에게 적극적으로 분배하는 노력이 의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후략)
1967년 선거에서의 한 연설.
"나는 정치인으로서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나의 비원이 있습니다. 내 소원은 돈이 아닙니다. 2억도 싫고 20억도 싫고 200억도 싫습니다.
내 소원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신라 삼국통일 이래 1500년 동안 처음으로 이렇게 국토가 갈라져 있는 사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해방후 국토가 20여 년이나 분단된 이 사실이, 나는 통일이 없으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평화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건설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박정권 아래에서 건설입네, 수출입네, 증산입네, 하면서 몇 사람만 잘살게, 몇 사람만 부자되게, 몇 사람만 배떼기 부르게 만들고 부익부... 재벌은 더욱 더 대재벌을 만들고 모든 국민은 헐벗은 가난뱅이요, 모든 국민은 더욱 빈익빈하게 만드는 이 특권경제를 타파하고, 내가 주장하고 우리 당책으로까지 채택된 중산층과 근로대중을 중심으로 한 대중경제체제를 실현해서 나라의 혜택이 국가의 혜택이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 모든 사람의 피부와 뼈끝까지 골고루 돌아갈 그러한 올바른 경제정책이 이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나의 절대적인 소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1970년 저서 '1970년대의 비전' 중.
(..전략)
오늘날 우리 나라 국민들은 적어도 헌법이념상으로는 ‘교양과 재산’을 가진 시민계급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는 19세기의 근세 초기 민주주의의 제한된 시대에 살지 않고, 만 20세 이상의 성년이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 20세기의 보편화된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 나라의 기본법과 법률제도는 외관상으로 다른 어느 선진 민주제국과 비교해도 과히 손색이 없는 이념과 가치를 선언하고 있고, 또 이들 제도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1인 1표제의 원칙에 입각해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대중의 권익을 보호, 신장하는 데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현 우리 나라의 정치체제는 겉으로 드러난 상징과 제도만을 가지고 규정한다면, 데이비드 이스튼 교수가 그의 명저 『정치체계론』에서 정의한 바 ‘정치체계 속에 투입되는 모든 요구를 설정시키고 모든 결정을 유효케 하는 방법의 규제조치로서의 체제가 민주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서와 이론상에 비친 그림 속의 떡 같은 정치체제일 뿐 우리 국민대중이 지금 이 역사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실감하는 실제의 정치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중략)
철인정치를 구가한 고대 희랍의 플라톤으로부터 오늘의 개발독재 옹호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엘리트에 의한 통치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대중이 지배하는 정치를 혐오하고 비판했다.
#1 대중은 무식하고 학식이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2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3 대중은 허망한 것을 약속하는 선동정객에 표를 매수당한다. #4 대중은 언제나 권위지향적이며 자조력도 발전의욕도 없다. #5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가 똑같이 1표씩 갖는 것은 불공평하다.
개발독재 옹호자들은 대중의 자치역량을 지나치게 회의하고, 지식수준의 열악함을 개탄하여 대중에 의한 지배를 회피한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에 대한 피상적 관찰의 산물이다.
국민대중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개발독재 지지자들이나 엘리트 통치예찬자들이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우매하지도 않았고 무능하지도 않았다.
봉건정치의 이론적 대종인 공자조차 대중을 가리켜 ‘지극히 어리석되 가히 속일 수 없는 존재’라고 갈파하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대중은 언제나 자기의 올바른 지도 세력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독재정권의 타도에 앞장섰다.
대중은 언제나 역사의 편이었으며 또한 최후의 승리자였다. 나폴레옹도 진시황도 대중 앞에서는 무참한 패자가 되고 만 것이다.
(...중략)
첫째. 박정권의 경제건설이 외국의 반완제품을 도입 가공하는 매판적 건설이며 이것이 국부를 한없이 해외로 유출시키고 있으며 농업을 희생으로한 건설이 도시, 농촌 간의 이중구조를 극대화하고 경제기반의 파탄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그 청산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적 분업관련의 심화에 의한 내포적 공업화와 농공업간의 긴밀한 관련발전 위에 국민경제 전반의 통일성 있는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은 자율적인 재생산권의 형성을 촉진하여 우리 경제의 상대적인 자급자족 체계의 실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둘째, 공업화의 과정에 있어서는 국가는 전력 수송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집중투자하는 동시에 민족자본인 중소기업의 보호육성과 이의 경제적 단위에로의 발전을 위하여 관련기업간의 수평적 계열화를 적극 지원하도록 유의할 것이다.
(..중략)
셋째, 농업은 식량의 자급자족과 경제발전의 기본 여건으로서 가장 중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농업의 구조는 한국농업이 지니고 있는 제조건에 비추어 자발적인 농민참여에 의한 협업농의 창설과 자주농업의 안정에 그 중점이 두어질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공업과 농업간의 분업 관련의 심화를 위해 상업적 농업의 전개가 권장될 것이다. 특히 어떠한 정책방향도 경제적 유인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이를 유도하는 조치가 꾸준히 취해져야 할 것이며 농업취업자와 공업취업자간의 소득 균형을 위한 적정한 농산물 가격과 이중가격제도, 가격예시 및 유지정책이 취해져야 한다.
넷째, 계층간 분배구조는 산업민주주의의 실현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에 의한 자본에 대한 약간의 간섭과 근로자의 경영참여가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근로자의 경영참여는 단순히 권익확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협력에도 큰 의의를 둔다.
근로자의 정당한 배분참여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기업체에 있어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종업원 특수제도를 법제화할 것이다.
다섯째, 국민경제의 운용에 있어서는 혼합경제의 한국적 형인 대중경제는 경제의 계획적 운용을 추진하다. 그리고 경제의 계획적 운용을 위하여는 약간의 기간산업을 국가가 소유할 것이다. 그러나 그 범위는 한정적이고 과도적이다.
여기서 특히 강조할 것은 대중경제는 어디까지나 시장경제의 기능을 존중하는 대중경제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발전과 운용은 크게 격려될 것이며 그것이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에 공헌하는 한 결코 침해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여섯째, 대중경제는 재정금융세제의 운용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소수 특권층 위주를 단호히 배격하고 이미 지적한 바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 중소기업의 육성, 농업경제의 급속한 발전 위주의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 폭넓은 중산안정계층이 형성됨으로써 우리의 경제가 무한한 발전을 지향함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안정의 물질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다.
(...후략)
1973년 저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중.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도자라는 사람의 가치가 도대체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는 점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바로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있었느냐, 또는 얼마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국민을 대했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자기 나라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느냐,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는 올바른 방향과 정책들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 그런 정책을 실현시키기위해 노력했는가 - 즉, 어느 정도로 충실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국민을 대했으며 봉사했는가, 그 실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 방식을 철저하게 가진 인물이라면 가령, 그 사람이 높은 지위에 앉았던 기간이 비록 짧았더라도 그리고 별로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역사 속에서 길이 기억하며 존경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국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정치의 기본 이념과 신조로 삼고 있다. 나는 국민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거나, 국민에게 자비심을 베푸는 것과 같은 정치 자세를 경멸하며 또한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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