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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국가의 도덕

맛있는물 2009. 9. 16. 02:54

 

 

   생산을 과학적으로 조직하면 현대 세계는 노동력 중의 작은 일부만으로도 사람들을 아주 편안하게 지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쟁은 결정적으로 보여 주었다. 당초 사람들을 전투와 군수 노동에 투입할 목적으로 생겨난 그 같은 과학적 조직이 만일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도 모두들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옛 혼란으로의 복귀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을 해야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게 방치되었다. 왜? 일은 의무이므로, 사람은 그가 생산한 것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미덕에 비례해 임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예 국가의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겨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비참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버트런트 러셀.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발바닥의 물집,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한 체코 격언은 그들의 그 고요한 한가로움을 하나의 은유로써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들은 신의 창(窓)들을 관조하고 있다고. 신의 창들을 관조하는 자는 따분하지 않다, 그는 행복하다.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
 밀란 쿤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