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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중.

맛있는물 2019. 5. 7. 22:52

 

 

12p

대한민국은 위계와 서열의 사회다.....  (중략)......이 사회에서는 위계질서적이지 않은 관계를 찾기가 아예 힘들 정도다.

 

166p

 권력이란, 어쩌면 마약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개체의 생각뿐만 아니라 인성이나 인격,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고 만다. 사실 마야콥스키 같은 혁명시인들이 1920년대에 가장 많이 다루었던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공산당원의 오만심'같은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옥중이나 유배지에서 모두가 평등해지는 세상을 위해 싸웠던 과거의 혁명가들이, 혁명 이후 관료가 되고 나서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다 싶은 사람들에게 무작정 반말질해대고  술김에 식당 웨이터에게 손찌검 하는 등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상황을 마야콥스키의 풍자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시들을 읽으면 권력보다 더 무서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은 위험천만하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든 민주화운동가 출신이든, 권력을 쥐고 나서도 인권과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굳이 1920~1930년대 소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민주화운동 인사들조차 나중에 공기업 사장 등이 되어 노동탄압을 자행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진보 인사'들을 요직에 두루 임명할 '진보 대통령'이 아니다. 아무리 출발점은 진보였다 해도 집권 이후의 보수화는 거의 불가피하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권력자에게도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권력 견제 시스템이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견제 메커니즘이 있있어야 권력자들의 기득권 옹호 등에 대응해 그나마 약간이라도 균형 잡을 수 있다. 그런 메커니즘이 1920~1930년대 소련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사회주의 혁명의 왜곡과 변질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파편화

 

 

기만의 언어

 

181p

 압권은 다문화라는 표현이다. 대한민국에 명실상부한 다문화, 즉 여러 문화의 공존이란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다......  (중략).......도대체 뭐가 '다문화'란 말인가? 한국에서 '공식적인' 문화는 하나뿐이다. 학교 교과서들이 규정하는 '주류 한국문화' 말이다. '이민자 노동력 이용'이라든가 '결혼 이민자 동화' 같은 보다 솔직한 용어를 쓰는 건 좀 부끄럽긴 부끄러운 모양이다.

 한편 기만적인 용어 말고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용어들의 명단도 아주 길다. '세계화-국제화'(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영미권 주류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_, '구조조정'(대량해고와 노동조건 악화), '노동개혁(노동조건의 지속적 개악),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대량적 비정규직화)----- 가끔 이사회의 언어가 작정해서 약자들을 괴롭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비정규직 착취의 법적 기반을 이루는 악법의 이름이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면, 도살장의 도살 집행자들을 '가축 보호요원'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184p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빈곤의 모습은 아마도 '제도화 구조화된 불안'일 것이다.

 불안은 중하층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그런데 자본의 먹이사슬에서 그보다 지위가 약간 더 높은 중중 중상층을 보면, 불안은 줄어드는 대신 '시간적 빈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광적으로 빠른 업무 리듬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저런 질환들을 얻어가면서, 시간적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는 것이 중중 중상층 '타임푸어'들의 모습니다. 보수신문들은 가끔 한국의 중중층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화려한 연봉' 이야기를 해가면서 교묘하게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키워 분리통치 효과를 노린다. 그러나 실제로 이 '귀족노동자'들이 한달에 300만-400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 주당 60시간 정도 일해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대부분은 골병이 들어 40-50대가 되면 건강이 거의 망가진다는 사실은 일부러 누락한다. '잘사는 노동자'라는 게 자기 시간은 거의 없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기업'에 지배당하는 노동자라는 점을, 제도권 언론들은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191p

.....착취 억압에 극심한 인격무욕, 아니 하급자의 인격부정까지 포함하는 이런 현상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를 외국어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Gapjil'이라는는 개념어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195p

 지배연합의 너무나 가시적인, 대대적인 갑질은, 수많은 중소기업인이나 심지어 돈이 있는 개인 소비자들에게도 하나의 롤모델이 된다. 삼성 반도체 LCD 직업병 피해자 중 79명이나 사망해도 공장이 별다른 법적 문제 없이 계속 돌아갈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체불하고 대학원생에게 대필을 강요한들 무엇이 무섭겠는가? 큰 도둑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작은 도둑들도 그 흉내를 내게 돼 있다.

 

 

197p

 한데 동시에 상당수 국가들에서 선거정치의 중심축은 좌측이 아닌 우측으로 이동한다.....(중략)

 여러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중 하나를 최근에 목도할 수 있었다. 위대한 투쟁의 역사를 지닌, 하지만 주로 정규직 교원으로 이루어진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들의 일괄적이며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다고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명시적인 이유는 예비교사들과의 이해충돌이지만, 사실 절실히 필요한 만큼 교사를 충원하면 그런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정규직과 거의 같은 일을 한다. 담임도 맡고 행정도 같이 하는 동료다. 그러나 일단 (중)교육공무원 신분이 아닌 이상, 정규직 집단의 입장에서는 기간제 교사를 일종의 '완충지대'로 여기는 것이다. 교육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이 있든 없든 간에 그 어떤 월급쟁이 교사도 사회학적 의미에서는 광의의 '노동계급' 구성원이다. 한데 그 신분 차이라는 '벽'이 같은 직종 안에서조차 '같은 노동계급' 사이에서의 단결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 셈이다.

 이를 계급의 파편화라고 한다. 이런 파편화야말로 한국에서든 어디에서든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를 가능케 한다

 

227p

 그때 들려온 대답이 정말 걸작이었다. "천재는 한국 교육 체계를 버틸 리가 없고 계속 살 리도 없죠. 서울대로 가는 아이들은 , 대부분 부유한 부모를 둔, 학원에서 대단히 잘 관리된 수재들입니다."

 

 

22p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금도 야당 인사 중에서는 노무현 시대를 황금기처럼 언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인간이나 정치인으로서의 품격 차원에서는 노무현과 박근를 비교할 수 없다. '급'이 다르다. 한데 구체적인 정책을 비교하다 보면, 북관나 역사 관련 시책 등 상징성이 강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 기본노선은 과연 렇게까지 달랐을까 싶다... (중략)

23p

 '민주 대통령 노무현'의 자본과 노동 관련 정책도 놀랍도록 보수적이었다...(중략)

 자본친화적 정책의 이면은 바로 반노동 정책이다. 박근혜정권은 민주 국가에서 전례 없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장 구속으로 세계적 악명을 얻었지만, 노무현 정권도 노동투사 구속을 유별나게 쉽게 했 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임기중에 감옥에 잡혀 들어간 노동자는 1,100명에 가까워 김영삼 정권 시절보다 두 배나 됐다. 박근혜 정권은 경찰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살인으로 온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무리한 초강경 진압은 노무현 시절에도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2006년 사망한 하중근 열사를 기억하는가?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던 그는 평화집회에 참석했다가 진압 과정에서 방패로 뒷머리 우측을 가격당해 쓰러진 뒤에 경찰에게 어떤 구급조치도 받지 못하고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뒤 결국 뇌사상태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백남기 살인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듯, 하중근 살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하중근 열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중략)

 

25p

 광장으로부터의 압력은, 보수정권으로 하여금 민중에 다소 이로운 정책을 추진하게끔 강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노태우 정부는 분명히 반민주적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다. 그럼에도 노태우 시절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고, 국민의료보험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고,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이는 과연 무엇인가? 바로 거리로부터의 지속적 압력, 민주노조 건설과 파업이 자유워진 공장들로터의 압력이었다.